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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졍 - 잠뜰, 각별

내 하나뿐인 친구 각별이에게

안녕 각별아

그곳에선 잘지내고 있지?

너가 떠난지 벌써 3년이 지났지만 도저히 널 잊을수가 없어서 이렇게 편지를 써보려 해

그렇게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빨리 말도 없이 떠나버렸는데 어떻게 잊을수가 있을까

처음에는 나때문에 네가 그렇게 가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힘들었어

하지만 이제 나는 이때까지의 행복과 아픔을 안고 앞으로도 잘 지내고 있으니 내 걱정마

나는 잘 지내고 있는데 너는 잘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네

난 지금 당연히 퇴마사일 열심히 하면서 애들하고 잘 지내고 있어

죽음과 가까운 이곳에서 각별이 너가 내 곁에 없다는 것이 참 힘들긴하지만 매일매일을 추억할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잘 살고 있어

이때까지 너랑 수많은 추억을 쌓을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고 우리가 만날때부터 헤어질때까지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나랑 함께 헤쳐나가줘서 고마웠어

항상 누구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주고 항상 함께해준 너였기에 내가 이렇게 잊을수가 없는것같아

매일매일 너를 생각하고 추억하고 있을테니 그곳에서는 부디 잘 지내줬으면해

생에 하지못했던 일들 다 하고 잘 지내길 바랄게

평생 잊지 못할 내 하나뿐인 친구 각별아

너가 생각나는 그날 다시 편지쓸게

너를 항상 잊지 못하는 하나뿐인 친구 잠뜰이가

돌아가기.png
다은 - 잠뜰, 수현

행복했던 그 때로 돌아가자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나의 사무실에 수현이가 찾아왔다.

 

나를 보자마자 건넨 말은,

 

"아무래도 그때 그 카메라가 문제가 아니었던 거 같아 "

 

난 그말을 듣고 놀라 " 그럼 ... 무슨 문젠데...?" 라고 물었다

 

그러자 다시 대답이 돌아왔다.

 

" 다른 카메라에서도...그 야괴들이 막 보여... " 라고.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 괜찮을거야 금방 익숙해질텐데 뭐 " 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다시 대답이 돌아왔다.

 

" 나 그 일때문에, 휴가쓰고 오는 길이야. 진짜 걱정되 내가 다시 그 일을 시작할수 있을지 말이야" 라고.

 

그래서 난 다시 대답하였다

 

" 그래 그러면 어차피 휴가 냈으니까 그때동안은 좀 쉬어~ " 라고 말하고 그 다음에는

 

" 그래 그렇게 된 이상 , 심령사진 전문 사진사를 하는건 어때? " 라고 이야기했더니

 

" 넌, 모르지? 내가 이일을 시작한건 내 꿈이었기 때문이야. 난 이일을 하려고 평생 공부해오고, 꿈꿔왔어. 근데 넌 그런것도 모르고 왜 그렇게 쉽고, 단순하게 이야기하는건데? 내가, 꿈꿔왔던 평생의 직업을 잃게 생겼는데?

 

아 됐어. 이제 이야기 안할게 이만 가볼게 잘있어. "

 

" 아 수현아! 수현아 ... ! "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아 생각했다. 내가 너무 단순하고 쉽게 친구의 일을 말한게 너무 후회스럽다. 친구는 이 야괴때문에, 평생 꿈꿔온 직업마저 잃게 생겼는데

 

나는 그거 무섭지도 않다며 , 뭐 심령사진 전문 사진사를 하라며 너무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 , 이제야 너무나도 후회가 된다.

 

몇일이 지나고,

 

그렇게, 수현이는 나에게 단단히 화가 났는지 몇일동안 연락이 없었고, 내 사무실에 찾아온 적도 없다.

 

사실 너무 걱정된다. 나때문에 많이 화도 났을테고 , 힘들기도 할텐데 아무 연락이 없다는게.

 

연락이 온다면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미안해, 그땐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 이제와서 이렇게 하는 거 싫은거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잘못한 일은 내가 사과해야 할 것 같아서."

 

라고 ,

 

하지만 몇일이 지나도 연락은 오지않고 , 나에게 찾아오지도 않았다.

 

어느 날, 길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수현이랑 마주치게 되었는데.

 

수현이는 나에게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날 모르는 사람처럼 보더니 슥 그냥 지나가 버렸다.

 

" 쟤... 아직도 나에게 화가났나봐.. "

 

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집에 돌아왔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다시 만나야 할지 , 아니면 이대로 그냥 조용히 있어야 할지.

 

정말 마음 같아서는 다시 만나서 이 관계를 빨리 해결하고 싶었지만,

 

수현이는 어느순간 내 주변에 나타나지 않았다.

 

주변에 나타나도 나를 모르는 사람 취급하며 그냥 슥 지나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수현아..."

 

나는 하루하루 정말 힘들었다 , 너무 수현이에겐 미안한데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하면 만나서 이야기를 할까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분명 수현인 이야기 하지 않을게 분명하다.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분위기는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어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다시 연락을 해볼까,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이렇게 조용히 있는 것보단 나은 것 같다고 생각해서 수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수현아, 내가 그땐 너무 미안했어, 내가 그땐 너무 판단을 못하고 말했던 것 같아, 너무 늦게 사과한 것도 미안하고

 

너에게 그렇게 상처될 말 해서 미안해. "

 

라고 보내놓은 다음 난 일을 하였고, 폰에서 " 띠링 " 하는 문자 알림음이 들려왔다. 그래서 난 바로 폰을 확인했는데,

 

수현이의 답장이었다. 약 20분전에 와있었는데,

 

"이제와서 그런다고? 그때부터 너한테 정말 상처받았었어, 어떻게 그런말을 쉽게한건데? 판단을 못했어?

 

너 내가 무슨일 하는지 알고있잖아, 네 친구가 힘들거라고는 생각 안해본거야? "

 

라고 말이다, 수현이는 아직 화가 덜 풀리고, 나와 대화하기 싫은 것 같았다. 하지만 답장이 와있었기 때문에

 

다시 나는 이렇게 회신했다.

 

" 이제 와서 그런거 미안해, 아직 너가 화가 나있는 것 같아. 그땐 정말 미안했어, 너의 힘듦을 그렇게 쉽게 판단해서

 

정말 미안했어. 우리 예전처럼, 돌아가면 안돼...? "

 

라고 보내고 난 그때 당시 시간은 밤이었기 때문에 잠에 들었는데, 한 새벽 6시쯤 또 " 띠링 " 소리가 들려 깼다.

 

그때 와있던 답장이,

 

"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나도 이제 슬슬 너에게 화난것, 풀어나가고 있어, 우리. 예전처럼 다시 돌아가자

 

엄청 친했고, 행복했던 예전으로 말이야. "

 

라고. 이제 난 안심했다. 수현이가 화가 풀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예전처럼 행복하고, 친했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고,

 

수현이는 휴가를 마치고 다시 사진사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더이상 야괴가 보이지는 않는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 정말 다행이야, 너가 그렇게 꿈꿔왔던 일을 못할 뻔했다가 다시 그렇게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잖아. 정말 축하해 수현아. "

 

라고 대답해주자 돌아온 대답,

 

" 축하해줘서 고마워, 나도 다시 예전처럼 복귀할 수 있을까 정말 고민이 많았었는데, 이렇게 다시 할 수 있게 되서 너무 행복해. "

 

라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 둘은 다시, 행복했던 그때로 돌아오게 되었다.

강정 - 잠뜰

 어스름한 밤에는 항상 물비린내가 나곤 했다.

강물, 혹은 바닷물에 잠겨 흐름을 따라 흘러가고 싶은 묘한 기분은 괜스레 좋던 기분을 망치려 들었고 불가피하게 그것을 피하지 못한 그는 축 젖어 묵직해진 솜인형처럼 저하된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게 아무도 없느냐-"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중, 우렁찬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 망할 거북. 잠뜰은 당장에라도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리할 수 없었다. 그 거북이가 사는 동시에 수호하는 곳이 바로 이 해광시인 탓도 있고…, 무엇보다 그날을 기점으로 영영 사라져버린 부엉이를 대신할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야괴는 여전히 나타났다.

공룡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양한 형태와 능력, 사연을 가진 채 그들은 여전히 보였고, 잠뜰이 휘두르는 월광 검에 스러졌으며 수호령 라더에 의하여 반대편의 해광시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매일 반복되는 레파토리에 잠뜰은 슬슬 회의를 느꼈다. 모든 것이 지루했고 지겨웠다.

 

 "아, 거북 님…."

 

 사악, 비단옷이 스치고 유리 테이블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뒤돌자 수호령 라더가 가만히 선 채 잠뜰을 보고 있었다. 강물처럼 맑은 동시에 바닷물처럼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라더의 새파란 눈이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또, 그 싸가지 없는 부엉이 녀석을 생각하는 게냐?"

 

 아뇨, 딱히 그런 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은 그는 이 이상은 힘들다는 듯 시선을 피하려 의자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라더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쯧, 혀를 차곤 고개를 내저었다.

 

 "흥, 처음 봤을 때는 분명히 이 정도로 약하지 않았건만."

 "거북 님, 댁이 강해지셨는데요."

 "이런 네가지 없는 것…!"

 

 태연한 그의 말대꾸에 라더는 한껏 짜증을 내더니 느린 걸음으로 잠뜰의 맞은편 의자에 걸어가 앉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살래살래 젓다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인기척만으로 자신이 받아야 할 물건이라는 걸 깨달은 잠뜰은 손을 힐끗 보다 인상을 찌푸리며 라더를 째려봤지만, 별 반응 없는 모습에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쿵. 간인지 심장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몸속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라 할까, 갓 지은 밥을 냉동실에 넣은 것처럼 온몸의 피가 빠르게 식었다. 거북 님의 손 위에 올라간 샛노란 색의… 반짝이는 깃털. 어째서 이게 여기 있지? 생전 있는지도 몰랐던 또 다른 인격이 튀어나와 그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와 동시에 답변을 주었다.

 

 "각별."

 "역시 아는구나. 그래, 네가 모를 리는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 부엉이 놈의 것이 아니냐."

 "하지만 그는 야괴였고…, 이미 사라졌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오늘 발견했다. 똑같은 모습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도. 그 짹짹이라는 새와 함께 다니는 것도. 다만… 생사의 순환을 벗어났을 터인데. 어째서…."

 

 장난치지 마세요, 망할 수호령씨. 아주 어이가 상실되는 상황에 저절로 욕이 나올 지경이었다. 무슨 소리인가, 우리는 그때 똑똑히 두 눈으로 보지 않았는가. 각별과 공룡이 바다 저 아래로 사라지는걸. 그리고 그것은 저쪽 광하시의 존재들도 함께 보았다. 그렇게 영영 사라지는 걸 다 같이 본 주제에….

뿌드득, 자연스레 이가 갈리는 걸 깨달은 잠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나이가 많은 존재라 하더라도 제 앞에 앉은 것은 무려 수호령이다. 아주 명확하게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던 그는 몰려오는 짜증과 함께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함에 물든 눈두덩이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말은… 말은 걸어보셨고요?"

 "말을 걸었더니 바로 날아가 버리더구나. 꼭 제 잘못을 들킨 것 마냥. 쫓아갈까 했지만…."

 "못 쫓아가시고 눈으로만 좇았단 소리죠? 어휴. 그럼 그렇지."

 "어허! 설마 실수겠느냐. 일부로 그랬다!"

 

 괜한 부분에서 비꼬는 잠뜰이나, 그것에 반응하며 역정을 내는 라더나, 도토리 키재기 수준으로 다를 것은 없었다. 하지만 부엉이, 그러니까 야괴 모습의 각별을 발견한 것에 대해서 잠뜰은 더 생각하기 싫었다. 그날을 다시 떠올려보라고 한다면 언제든지 가능했다. 그건 큰 상관이 없었으니까. 문제는 그날 이후부터였다.

각별, 공룡. 죽은 자들이 야괴로서 이쪽의 해광시에 들어와 살았고, 최후에는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끌어안고 바다 저 밑으로 사라졌던 그 날. 여기까지는 좋았었다. 이후에 라더와 함께 그들의 무덤에 찾아간 것 역시 괜찮았다. 그런데 하루… 이틀… 날이 지날수록 점점 미묘하게 거슬리는 게 있었다. 여전히 야괴를 월광 검으로 처치하는 부분에서 함께 하는 것은 라더였고 둘은 파트너로서 어울리지 않았다. 평소 각별과 함께 야괴를 처치할 때 들리던 은근한 조언과 잔소리가 그리울 정도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아쉬움과 그리움으로만 짐작했는데 점점 갈수록 그것보다는 좀 더 깊고 짙은 외로움이 생겨났다.

마치 하나뿐인 가족을 잃어버린 느낌. 진득한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잠뜰에게 그것은 큼직한 상실감을 안겨주었고 잠뜰은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는 상실감을 품에 가득 껴안고 가만히 서서 그 무게에 짓눌렸다. 종종 그 상실감을 없애려 한 입씩 베어 물어보기도 했으나 그 속에는 의외로 죄책감이 잔뜩 차 있어 잠뜰은 급기야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흠. 어찌 되었든 간에 오늘 밤에 한 번 나오거라. 다른 큰 야괴가 하나 있던데... 그걸 쫓다가 부엉이 녀석을 발견하는 바람에 놓쳤다."

 "풉, 다 하실 거 같더니 그것도 못 잡으세요?"

 

 아니다. 이것은 진심이 아니다. 잠뜰은 그렇게 속으로 제게 뇌까렸다.

 

 "어허- 그러는 너는 이틀 전에 야괴를 놓치지 않았더냐! 내가 오늘 그것을 쫓다 온 것이다!"

 "그때 제가 놓쳤다고 그렇게 면박을 줬으면서 본인도 놓치시네요~?"

 

 필사적으로 각별에 관한 이야기를 피하고 싶어 괜히 라더만 놀리던 잠뜰은 한참을 웃음 짓다 진지해진 상대의 눈을 마주하고는 굳어버렸다. 애써 장난을 친 것이 무색하게도 상대는 한결같이 진지한 눈빛을 한 채 잠뜰의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되었다. 오늘은 쉬는 게 좋겠군. 놓친 것은 내가 다시 잡아보지. 그러니 잠뜰이 넌 좀 쉬어라."

 "괜찮아요. 그냥 빨리 둘이서 잡고 정리하는 게…."

 "어허! 네 놈의 눈 밑이 거무죽죽- 한 것이, 며칠 밤 날을 새었느냐! 그렇게 잠 좀 자라고 몇 번을 말해도… 쯧쯧. 그 부엉이 녀석이 진짜로 돌아다니는 거라면 내가 어떻게 해서라도 잡아 올 테니, 오늘은 그만 쉬어라."

 "아 진짜… 알았어요…."

 

 다다 쏘아붙이는 라더의 잔소리에 잠뜰은 포기했다며 두손 두발을 들었다. 하지만 라더는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지금 시간이 낮이긴 하나 며칠 밤을 새운 잠뜰에게 그것은 큰 상관이 없을 것이기에 확실히 하려 라더는 큰소리를 쳤다. 지금 당장 침실로 들어가 누워라 는 말에 잠뜰은 화들짝 놀라며 지금…? 당장? 이라며 역력히 당황한 기색을 보였고 한참 눈치를 보다 저를 노려보는 라더의 눈에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

옷은 사복으로 대충 티셔츠와 편한 바지를 입은 것이 다였기에 잠뜰은 꾸물꾸물 기어 침대에 누웠다. 어차피 잠이 오지 않는걸 명확히 알고 있던 그는 대충 자는 척이라고 하려 했으나 뒤따라 들어온 라더가 의자를 끌고 와 머리맡에 앉는 걸 보고 바로 포기했다.

 

 "…굳이 자는 걸 보고 가셔야겠어요?"

 

 그 말에 라더는 가만히 머리를 주억거리며 자세를 고쳐잡을 뿐이었다. 왠지 이 상태로는 뭘 더 할 수 없을 거 같아진 잠뜰은 데굴데굴 굴러 이불을 제대로 덮고 누웠다.

 

 "그런데요, 거북 님."

 "왜 그러냐."

 "안 자는 게 아니라 못 자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이 모습 말고 쪼끄만 거북이 모습으로 있어 주시면 안 돼요?"

 "허… 그래, 알았다."

 

 웬일인지 순순히 잠뜰의 말에 작은 거북으로 변한 라더는 엉금엉금 기어 의자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제야 잠뜰은 꽤 마음에 들었는지 기분 좋게 웃었다.

 

 "못 잘 거 같긴 한데, 그냥 각별이처럼 잔소리 좀 해주세요."

 "어떤 식으로 말이냐."

 "그냥… 뭐, 어제처럼 그따위로 해서 뭘 돈을 받냐… 속물 퇴마사 어디 갔냐, 라던가 이래서 공룡을 이길 수나 있겠느냐 던다 단 거 그만 먹어 라던가……. 잠 좀 자라던가. 이이씨, 멍청한 부엉이."

 

 점차 우는 것처럼 잔뜩 젖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잠뜰의 말을 가만히 듣던 라더는 나름 부엉이 각별이 있었을 때 들었던 말투로 잔소리를 하나하나 해주었다. 평소 같았으면 짜증 날법했던 게 지금은 하나하나 너무 소중한 말들이었고, 잠뜰과 멀리 사는 할아버지를 제외하고는 하나뿐인 가족의 사라진 말이었다. 그래서일까 어쩐지 피곤하고 졸리기만 했던 몸에 수마가 몰려드는 것처럼 그는 그대로 잠들었다.

뭐, 사실 그것 덕분은 아니었다. 이제는 힘이 돌아온 라더였기에 작은 거북이의 모습을 하고서 잠뜰이 잠을 잘 수 있게 능력을 써줄 수 있었고 그걸 모르는 잠뜰은 곤히 잠들었을 뿐이었다. 아주 잠시나마 외로움을 떨쳐내고 편안한 잠에 빠진 것이다.

 

***

 

 "으윽…. 난 그저… 그곳에 있기 싫었을 뿐인데…"

 "하나 결국 이곳에 들어와 산 자들에게 피해를 준 것은 엄연히 잘못. 애초에 죽은 자가 이곳에 온 것도 잘못이다. 알겠느냐!"

 

 나름 제 딴에 변명이랍시고 야괴가 내뱉는 말들은 수호령이 듣기에 그토록 한심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더 화내기도 그렇고 하여 야괴를 가둔 물을 조절하여 야괴를 없앴다. 사실 따지자면, 저쪽의 해광시로 보낸 것이었다. 결국, 그도 해광시를 지키는 수호령이니 저쪽과 이쪽 간의 균형을 맞춰야 했으니까. 자칫 그대로 두었다가는 생사의 순환을 벗어났던 선례와 동일하게 영영 찾지도 못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전날 잠뜰이 놓쳤던 야괴를 잡은 후 수습까지 끝낸 그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잡아서 그런지 한적한 골목가였다. 대충 보니 주변에 사람은커녕 인기척도 딱히 느껴지지 않기에 그는 훌쩍 뛰어 지붕 위로 다니기 시작했다. 이미 해가 완벽히 가라앉은 밤이 되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어두운 심해의 검푸른 색이었고 반대로 아래의 도시는 환히 빛이 나는 것이 바닥을 수놓은 은하수 같았다. 다만 그 광경을 항상 알고 있던 라더로서는 전혀 그런 광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위를 천천히 살피고, 십자수처럼 놓인 아래의 노란 불빛을 피해 이리 저리를 둘러보았다.

휙- 하고 바람 소리가 거세게 귀를 때려댔다. 아마 옆에 잠뜰이 있었다면 무어라 짜증을 냈을 상황이었으나 라더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볼 수 없을 만한 얼굴로 주위를 둘렀다.

 

 "아- 거북이 혼자서 야괴 퇴치 다 하네."

 "허어, 자라고 했더니."

 

 마침 우연히 잠뜰이 그에게 다가왔다. 10층 내외로 보이는 건물 옥상이었으나 공룡이 사라지고도 멀쩡히 남아있던 월광 검의 힘 덕분에 올라왔을 게 뻔했다. 그 사실을 아는 라더는 제 능력까지 써서 재웠건만 괜히 일어나 야괴를 잡겠다고 온 잠뜰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마음을 읽은 걸까, 잠뜰은 픽 웃었다.

 

 "지금 잘 재워놨던 것이 괜히 일어나서 귀찮게 한다고 생각해요?"

 "잘 아는구나. 그런데 왜 왔느냐."

 "후…. 거북 님이야 말로 쫄래쫄래 저 쫓아오시지 말고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제가 놓쳤던 그 야괴는 잡았죠? 그럼 각별이는 제가 찾아서 잡을 거예요."

 "네 녀석은 정말…! 하, 너 혼자 잡지 못할 것을 안다. 차라리 같이 가는 것이 좋겠지."

 "됐어요. 진짜 나 혼자 잡을 거에요. 의외로 거북 님 능력이 좋아서 푹 쉬고 왔으니까요. 그만 가보세요-"

 

 푹 쉬고 왔다 하여도 고작 5~6시간을 자고 왔다. 잠뜰이 근 한 달 동안 손에 꼽을 정도로만 잤다는 사실을 라더가 모를 리 없었다. 그랬기에 라더는 더더욱 잠뜰을 믿지 못했고, 잠뜰은 은근 그것이 각별의 잔소리 같다고 생각하며 기분 좋게 그의 말을 되받아쳤다.

 

 "…저곳에서 느껴지는구나."

 "예… 네?"

 

 마침 잘됐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 라더의 시선을 따라 잠뜰의 시선이 옮겨갔고, 그 끝에는 도시의 불빛과 다르게 일정히 날아가는 노란빛의 새가 있었다.

 

 "각별?"

 

 방금까지 신나게 나오던 목소리가 뚝 끊겨 나오지 않았다. 사막 한가운데 떨어진 외딴 어린 왕자처럼 그저 그것을 쫓을 뿐. 반쯤 넋을 놓고 그것을 쫓아가는 잠뜰은 그 순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게임에 나오는 암살자들처럼 옥상을 훨훨 날듯 뛰어 샛노란 부엉이를 쫓았다. 내 하나뿐인 가족. …가족!

 

 "각별아! 각별, 각별!"

 

 사실 잠뜰이라고, 나라고 각별과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안다. 알고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그래서 짹짹아- 내가…"

 "이 부엉이 자식아!"

 

 저 멀리서 짹짹이 라는 작은 새와 함께 정다운 대화를 나누는 듯한 부엉이 한 마리가 있었다. 모습은 샛노란 깃털의 부엉이지만 사람 말을 하는 존재. 비록 새일지라도 얼굴에 표정이 다 드러나는 그런 존재. 조카보다도 상태가 나쁘던 날 먼저 선택하여 살려주었고, 나의 가족이 되어 준 존재. 하나하나 입으로 늘어놓기에는 너무 긴 수식어들이 그를 명명하였으며 나는 내 주변의 인간관계를 정리하듯 그 설명을 마음속 한구석에 가지런히 정리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헤집어질 대로 헤집어진 것을 제자리에 끼우는 기분이 들었다.

이토록 벅찬 감정을 생애 한 번이라도 가진 적이 있었던가. 어릴 적 이후로는 처음이지 않을까?

 

 "이런 멍청한- 부엉이가!"

 "자, 잠뜰…, 어떻게 안 거야!"

 "크흠!"

 "아- 어쩐지. 어제 눈이 마주쳤다 싶더라니…."

 

 한껏 쿵쾅대며 제게 다가오는 잠뜰과 마주한 각별은 화들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그를 끔뻑끔뻑 바라보았다. 당황한 각별과 화가 난 듯한 잠뜰, 그리고 뒤따라온 건지 작게 헛기침을 하며 서 있는 라더.

잠뜰은 저도 모르게 화부터 내고 말았지만, 각별과 제대로 마주하자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너무 꽉 깨물었는지 아파서 눈물이 절로 나왔다. 아주 펑펑.

 

 "야, 야… 그만 울어…."

 

 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은 각별은 제 날개를 펼쳐 눈물이라도 닦아주려 잠뜰의 얼굴에 비비적거려 보았으나 봇물 터진 듯이 새어 나오는 잠뜰의 감정들은 그 위로 빠르게 흘러내렸다. 결국, 반쯤 포기하고 잠뜰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그는 갈 곳 잃은 잠뜰의 손을 본 후 순순히 품에 쏙 들어가 줬다.

 

***

 

 한참 뒤, 잠뜰이 눈물을 그치고 나서야 각별은 그 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각별은 후, 한숨을 내쉬더니 눈물에 잔뜩 젖어 엉망이 된 잠뜰의 얼굴을 보고 재밌다는 듯 웃었고 잠뜰은 뭘 웃냐며 짜증 냈다. 마치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 돌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잠뜰뿐이었다. 각별은 그 일상을 더 이어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어 눈을 데굴 굴리더니 뒤의 라더를 한 번 바라보았다. 모든 상황을 직관하던 라더는 부엉이 각별과 눈을 마주치고서야 무언가 깨달은 듯 꽤 심각한 얼굴을 했지만, 뒤에 있던 터라 잠뜰은 그것을 보지 못했고, 라더는 참으로 안쓰러운 인연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있어?"

 "네 덕분에."

 "무슨 말이야?"

 "아- 매우 위대하시고 멋진 이 구역 최고 퇴마사님 덕분이라고."

 

 알아듣지 못하는 그를 위해 각별은 은근히 비꼬는 듯 장난치는 듯한 아슬아슬한 말투로 킥킥 웃어가며 답해주었다.

 

  "너, 여태 나랑 같이 있으면서 퇴마했던 야괴가 몇인지는 기억해? 그리고 네가 그것 덕분에 살아있는 것도? 왕모님들…. 그분들이 그랬지, 그 수많은 야괴를 처치한 네가 고작 야괴 하나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안 될 일이라고. 그래서 잠시 너와 작별할 시간을 준거야."

 "…하하, 퇴마사 하길 잘했네? 야괴 열심히 처리한 것도, 잘 한 거야?"

 "당연하지, 잠뜰아."

 

 그때, 각별과 있던 짹짹이가 포르르 날아오더니 콕, 각별의 꽁지깃을 잡아당겼다. 평소보다 푸른 빛을 띠는 깃털이 반짝이자 각별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날개를 휘적이고는 꽤 진지한 얼굴로 잠뜰과 마주했다.

 

 "그래서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너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러 왔어."

 "잠시만 작별…, 작별이라고?"

 "그래. 그 때 내가 사라지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돌아가야 했어. 그래서 내가 간청했지. 너와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않고 가는 건 정말 미안하다고."

 

 잠뜰은 허망해진 듯했으나 곧 마음을 다잡은 듯이 얼굴을 폈다. 이대로 영영 가는 것도 슬프지만, 마지막 작별인사라도 하러 와준 것만으로 그는 기뻤다.

 

 "그것만으로도 좋으니까…."

 

 잠시, 그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한 것인지 잠뜰은 각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러던 도중에 뒤에 있던 짹짹이가 다시 한번 각별의 꽁지깃을 잡아당기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났다.

 

"슬슬 가야 할 때인가 봐. 잠뜰, 넌 여태까지 잘해왔잖아. 그러니 내가 없어도 저- 수호령과 함께 퇴마사로서 열심히 해줘. 난 너와 있을 때가 가장 즐거웠으니까… 이제는 즐겁게 헤어지자."

 "아- 하하…. 그래, 그래야지. 각별아, 난 너와 함께 한 그 시간이 내 생애 제일 즐거웠어. 나중에… 언젠가 꼭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네."

 "고마웠다, 세계 최고 퇴마사 잠뜰. 계속 널 지켜볼게."

 "푸핫, 마지막이라고 치켜세워주네?"

 

 짧은 인사가 오가고, 그들이 웃고 있자 뒤에 앉아 있었던 라더가 벌떡 일어나 잠뜰의 곁에 왔다. 이내 자신이 수호령으로서 데려다 놓겠다고 하였고, 잠뜰은 정말 마지막이 될지 모를 인사로 그를 보냈다. 

 

 "잘 가. 각별아."

 

 잠뜰은 속에 잔뜩 널브러져 있던 각별에 관한 설명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선물상자를 포장하듯 포장했다. 언제든지 그가 그리워진다면 다시 그것을 풀어 하나씩 볼 요량으로. 라더를 따라 천천히 날아가는 샛노란 부엉이는 여전히 짹짹이와 함께였으며, 꽁지 끝부분에 그림자가 져 보랏빛으로 보이는 것이 참으로 어여뻤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각별은 영영 잠뜰과 헤어졌다.

잠뜰은 이제 괜찮았다. 각별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자 응어리처럼 들러붙었던 상실감이나 외로움이 천천히 증발했고,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붕 뜬 기분 그대로 집에 돌아가 침대에 풀썩 눕자마자 몸이 무의식적으로 막아둔 잠이 물밀듯 들어와 그를 수마에 빠지게 했다. 아주 행복한 날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는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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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건 나다. 만화나 영화에 나올것 같은 가족애는 살기 급급한 21세기의 사회 초년생인 공룡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동생이 자신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간 이후부터 냉담해진 부모와 자기 앞길은 자기가 스스로 잘 챙기고 있는 동생을 걱정하기 보다는 다음날 회식에서 어떻게 도망쳐 나올지 걱정하는게 공룡에게는 이로운 선택이었다.

 

그랬기에 공룡은 삶에 갑작스럽게 들어온 소중한 존재에 어쩔줄 몰랐다. 그 조그마한 아기는 어떻게 알았던건지 공룡을 처음 만난 날 바로 작은 손으로 공룡의 새끼손가락을 쥐었다. 갓 자란 새싹같은 연둣빛 눈동자에 자신이 비친 순간 공룡은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던 감정이 드는 느낌에 휩싸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는 처음 만난 제 아들의 앞에서 한참이나 눈물을 흘렸다. 아기는 자신을 보며 한참이나 울고 있는 제 아빠를 향해 방긋방긋 웃어주었다.

 

***

 

사회 초년생인 공룡이 아이를 홀로 키워내는건 절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족의 손을 빌리자니 부모님은 대학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동생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육아를 도와달라고 전화하면 신경질적으로 답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대학에 들어가 과제에 밀려 공부하는 동생에게 도와달라고 하기에는 양심에 찔려 동생은 방학 때마다 가끔씩 와서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

 

결국 공룡은 겨우 취직한 회사에 눈물의 육아휴직서를 제출하고는 눈칫밥을 먹어가며 유급휴가를 냈다. 그래도 공룡의 육아는 혼자 감당하기에는 매우 버거웠다. 공룡은 감기는 눈을 붙잡고는 책과 인터넷으로 육아방법을 알아보다가 아이가 울면 바로 달려가 환하게 웃어줬다. 그러면 아이는 제 아빠가 보고 싶었던게 맞았는지 작은 손으로 손뼉을 치며 공룡을 따라 환하게 웃었다.

 

그런 공룡의 정성을 알았는지 아이는 남들이 생각하기에 매우 바르게 자라주었다. 같은 나이 또래 아이가 마트에서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다며 심통을 부릴 때 아이는 제 아빠를 한 번 올려다보고는 들고있던 물건을 제자리에 올려놓았다. 남들은 아이가 어른스럽다며 칭찬을 했지만 공룡은 그것이 너무 미안했다. 아이에게 성취보다는 포기를 먼저 알려주는 것만 같아 공룡은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아이가 물끄러미 쳐다보던 물건들을 카트에 넣고는 그 때마다 원하는게 있으면 아빠한테 말하라고 크게 웃었다.

 

그래도 아이는 유난히 자주 불안해했다. 그 모습을 보고 공룡은 상처받기 일수였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상처받을까봐 직접 이유를 물어볼 수도 없어 공룡은 항상 아이 뒤에서 망설이다가 여러번 읽어 모서리가 닳아있고 형광펜으로 줄이 잔뜩 그어져 있는 육아서적만 뒤적였다. 그 모습을 보면 아이도 항상 울상을 짓고는 공룡을 흔들리는 시선을 보며 망설였지만 결국 아이도 공룡처럼 물어보지 못하고 돌아서기만 했다.

 

공룡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전처럼 입을 다물었다. 공룡이 할 수 있는거라고는 입을 다물고는 아이가 먼저 말하기를 기다리는것뿐이었지만 이런 질문을 받는것을 원하는게 아니었다.

 

"아빠, 아빠는 내가 있어서 힘들어요?"

 

"우리 동희 왜 그런 생각하게 된거니..."

 

공룡은 그 말을 듣자마자 목이 콱 막혀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목을 꾹 누르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목 안쪽에서부터 너무 아려오기 시작했다. 공룡은 당장 아니라고 우리 동희랑 함께하는 시간들이 아빠에게는 얼마나 행복한 선물인데.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목구멍을 가득 채운 슬픔과 눈물때문에 공룡이 할 수 있는 말은 바보처럼 떠듬거리며 겨우 물어보는 것뿐이었다.

 

"아빠 미안해. 그게 아니라, 미안해 미안해요 아빠 울지마요."

 

점점 눈썹이 파르르 떨려오는게 느껴졌다. 아이가 횡설수설거리면서 미안해하는 만큼 딱 그만큼 공룡의 얼굴이 점점 잔뜩 일그러져갔다. 동희야, 우리 동희 우리 너무 예쁜 동희야... 공룡이 점점 얼굴을 일그러트려가며 눈물을 뚝뚝 흘리자 아이는 제 아빠가 너무나 서글퍼 보여서 잔뜩 당황해서는 어쩔 줄 몰라했다.

 

"동희야... 우리 동희 아빠가 얼마나 너를 아끼는데"

 

공룡은 아주 작은 자신의 아이를 껴안았다. 아직 작고 약한 아이였기에 공룡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구부려서 아이를 안았다.

 

그 때 공룡은 아이가 지금보다 더 작고 어렸을 때 보던 책이 기억이 났다. 광고계정에 속아 산 눈이 아플정도로 진한 형광노랑색표지의 책에는 붉은색의 촌스러운 폰트로  -아이 앞에서는 절대로 울지마세요!- 라는 형식적인 문구가 적혀있었다. 라면받침대로 쓰다가 국물을 흘린 이후로 머리 속에서 잊혀진 책이 왜 지금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공룡은 그 장면을 떠올리고는 울다가 환하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빠! 울다가 웃으면 괴물이 잡으러 온다!"

 

"그러면 아빠가 멋있게 총 쏴서 없애버리면 되지!"

 

공룡을 따라 잔뜩 울상을 짓던 아이도 공룡이 웃자 같이 활짝 웃었다. 방금까지 세상 그 무엇보다 서럽게 울었던 것같은데 공룡은 어느순간 지금이 너무나 즐거워졌다. 태양이 땅끝을 향해 기어 들어가는 저녁시간 때 공룡은 아이를 안고서 집으로 향했다. 그래도 많이 자란것 같았는데 아이는 아직도 너무나 가벼웠다.

 

***

 

공룡이 아무리 아이를 아낀다고 해도 둘이 함께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공룡은 돈을 벌어 아이를 키워야 했고 아이는 보살핌이 필요했기에 공룡은 항상 어쩔 수없이 가장 이른 시각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는 가장 늦은 시각에 아이를 데리러갔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있으니까 괜찮다고 웃으며 말하던 아이도 점점 어린이집을 가기 싫다며 심통을 부렸다.

 

"동희야 오늘 한 번만 더 가자. 응? 이따가 각별삼촌이랑 같이 올게."

 

"나 오늘 진짜 가기 싫은데..."

 

공룡은 칭얼거리며 미간을 좁히며 꿍얼거리는 아이의 미간을 눌러 주름을 펴줬다. 이런거는 어디서 배운거야. 공룡이 차에 타고 난 후에도 한참이나 차를 바라보다가 결국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를 백미러로 바라보다가 공룡은 한숨을 쉬며 백미러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언제 동생이랑 같이 도망치고 동희 데리러 오지? 공룡은 아까의 제 아이처럼 미간을 잔뜩 좁히고는 액셀을 밟으며 동생이 다니는 의대로 차를 몰았다.

 

대학 근처의 수많은 교통신호와 출근시간대와 겹친 것 때문에 차는 해광시 한복판 도로에서 30분 째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벌써 졸업식 시작시간은 20분이 넘게 지났고 지금쯤이면 동생이 연설을 막 시작했을 때였다. 공룡이 신경질적으로 클락션을 누르자 앞차에 타 있던 사람들 중 한명이 창문을 내리고는 소리쳤다. 저기요 지금 당신만 차 막히는거 아니거든요?! 화를 내는 앞사람을 향해 대충 인사하고는 공룡은 입술을 질끈거리며 깨물었다.

 

공룡이 겨우 졸업식이 진행되는 대학의 대강당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저 멀리서 졸업식은 모두 끝나고 가족들과 함께 웃으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눈을 게슴츠레 뜨며 사람들 사이를 쳐다보자 저 멀리 강당의 입구 쪽에서 검정 머리에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별 장식 머리끈을 하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각별아!"

 

아 형 와 주었구나! 불안한 채 안절부절 못하던 동생은 공룡을 보자마자 환하게 펴졌다. 동생 주변의 서 있던 부모의 얼굴은 공룡을 보자마자 조금씩 구겨져 나갔지만 공룡은 애써 모르는척을 하며 동생의 품에 아까부터 계속 행인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던 오색찬란한 색의 화려한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꽃집에서 보이던 조금이라도 예쁜 꽃들을 모두 담아서 너무 혼잡해 보이는 꽃다발을 건네며 공룡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꽃집주인분이 말릴 때 말을 들을걸. 그래도 동생은 꽃다발을 보며 해맑게 아주 행복하게 웃었다.

 

오래된 디자인이지만 지금 봐도 깔끔해보이는 모습의 계단과 고급진 와인색의 높은 지붕을 가진 강당은 딱 봐도 돈을 바른 것처럼 보였다. 오는 길에 보았던 학교 교내 버스정류장들과 공룡이 다녔던 대학의 잔뜩 녹조 낀 물웅덩이같은 호수가 아니라 맑고 투명한 오리가 떠다니는 호수가 떠올랐다. 이따금씩 걸려오는 전화에서 말하던 풍경 좋으니까 한번 오라는 소리가 거짓이 아닌 듯 꽤 보기 좋은 풍경이였다.

 

"야 학교 진짜 좋더라. 결국 너가 졸업할 때야 오네."

 

"어차피 니가 여기 와볼 일은 없지 않니?"

 

공룡은 순간 찬물을 부은듯 정신이 확 차려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등줄기로 서늘함이 스쳐지나갔다. 이래서 올까 고민한거였지. 공룡은 화를 낼까 생각하다가 평소처럼 화를 내지도 못하고 그냥 실실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수많은 말들이 오고 간 후 공룡은 화를 내기에는 그럴 힘도 없었다.

 

"아... 그렇죠. 뭐."

 

"각별아, 이 근처에 점심 먹을만한 곳이 있을까?"

 

시선을 멍하니 두며 입술을 질끈거리다 갑작스럽게 걸려온 벨소리에 공룡은 정신을 차렸다. 자신의 말이 잘려 기분 나빴는지 따가운 부모의 시선을 받으며 공룡은 계단을 내려가 전화를 받았다. 평소에 아이와 시간을 가질 때는 짜증나던 소리가 지금은 꽤나 반갑게 느껴졌지만 전화내용은 절대로 반갑지 않았다.

 

'동희 아버님 정말 죄송합니다... 동희가 유치원에서 친구랑 싸우고 밖으로 몰래 나간것 같아요.'

 

"네? 우리 동희가요?"

 

공룡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감과 동시에 심장 부근에서 무언가 우그러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뒤에서는 누군가가 계속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게 들렸지만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었다.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는 핸드폰을 그대로 손에 꽉 쥐고는 공룡은 급하게 차를 향해 달려갔다. 차마 끄지못한 통화 속 아이의 유치원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며 계속해서 공룡이 통화를 듣고 있는지를 물었다.

 

공룡은 유치원을 향해 운전하며 차에 가만히 앉아 기다리지 못하고 몇 번이나 얼굴을 쓸어 내렸다. 아침에 깔끔하게 정리한 올린 머리는 어느새 헝클어져 이마를 덮었고 정장의 각은 주름으로 뭉그러져 아침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한 다리미질이 모두 소용이 없어졌다. 핸들에 얼굴을 기댄 채 숙인 허리는 공룡 스스로가 생각해도 많이 초라했다.

 

동희를 발견했다는 연락이 닿은건 해가 조금씩 져물어 가던 시각이었고, 동희를 찾은 선생님은 동희가 자신을 포함한 유치원 선생님들을 보면 계속 도망가려한다고 공룡에게 급하게 전화가 왔다. 겨우 찾은 동희는 공룡과 동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그들이 함께 사는 한옥아파트 옆에 서서 노을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유난히 작고 연약한 아이가 큰 아파트 옆에 서 있으니 더 외롭고 왜소해보였다.

 

"동희야 아빠가 얼마나 찾았는 줄 알아?"

 

"아빠다..."

 

"유치원에서 왜 친구랑 싸운거야? 왜 몰래 나갔어?"

 

공룡은 무릎을 수그려 아이와 시선을 맞췄다. 방금까지 공룡을 보고 흐리게 웃어보이던 아이는 유치원 이야기를 물어보자 마자 잔뜩 심통난 얼굴을 했다. 무엇이 우리 아들을 화나게 했을까. 아이는 작고 오밀조밀하게 모인 이목구비가 꿈틀거렸다. 어디서 배운 표현인지 아이는 콧등을 찡그리고는 미간을 좁히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유치원 싫어! 아빠는 아무것도 몰라"

 

화를 내는 아이와 시선을 맞추면서 동희의 손에 난 상처들에 색색의 캐릭터 밴드를 붙여 나갔다. 도망다니다가 여러번 넘어진건지 작은 손바닥의 옅은 상처에서는 피가 송글송글 새어나왔다. 밴드 속의 좋아하던 캐릭터를 보며 입꼬리를 삐죽거리며 웃으려던 아이는 그 모습을 들키자마자 다시 심통난 얼굴을 울상을 지었다. 공룡은 씰룩거리면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누르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우리 동희 왜 유치원이 싫을까?"

 

"유치원에서 자꾸 친구들이 놀린단 말이야..."

 

점점 작게 웅얼거리는 아이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공룡은 등 위로 내리쬐던 따뜻한 햇살까지 서늘하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아이가 가기 싫다고 고집부릴 때는 이유를 물어봤어야 했는데... 막연한 후회가 몰려왔다.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아이가 사라진 이유를 묻자 얼버무리며 열심히 찾고 있다는걸 강조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공룡이 밴드를 붙이지 못 하고 손을 파르르 떨고 있자 아이는 고개를 들어 공룡을 바라보았다. 아빠? 아이의 목소리를 듣자 그제서야 속으로 분노를 삼키고 있던 공룡은 정신을 차렸다.

 

"미안해 동희야 어린이집도 옮기고 이번주는 아빠랑 같이 놀자. 알겠지?"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하려는 공룡의 등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희야!"

 

"각별삼촌!"

 

자신의 손을 뿌리치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동생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를 보며 공룡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조소를 흘리던 동생은 동희를 한 번 세게 안아주고는 볼을 잡아당겼다.

 

"동희가 말도없이 사라져서 아빠랑 삼촌이 걱정 많이 했어요. 앞으로는 그러면 안돼."

 

잔뜩 뭉그러진 발음을 하며 미간을 좁히던 아이는 동생이 손을 놓자마자 빨갛게 달아오른 볼을 부풀렸다.

 

"기분이다! 오늘은 삼촌이 맛있는거 사준다!"

 

"삼촌 최고!"

 

아까까지만 해도 심통이 나있던 아이는 어느새 잔뜩 신나서는 동생과 공룡의 손을 잡고는 자주가던 식당으로 이끌었다. 식당이 해지는 방향에 위치해 있어 노을빛이 눈이 시도록 비췄지만 공룡은 고개는 돌리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면 보지 못할 재잘거리면서 원하는거 다 먹어도 물어보는 동희와 그 말을 듣고 가짜울상을 짓는 동생을 눈에서 놓치기 싫었다. 공룡은 이 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언젠가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이 순간만큼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스러지지 않기를 바랬다.

최박희 - 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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